메시도 막아낸 40세 골키퍼와 관중석으로 달려간 13번…카보베르데가 남긴 120분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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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가장 아름다운 패배가 나왔다.
현지시간 7월 3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가든스에서 열린 월드컵 32강전에서 아르헨티나는 연장 접전 끝에 카보베르데를 3대2로 꺾었다. 결과만 보면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의 예상된 승리처럼 보이지만, 경기 내용은 전혀 달랐다.
카보베르데는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세계 최강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두 차례나 동점을 만들었다. 승부차기까지 불과 몇 분을 남겨두고 결승골을 허용했지만, 경기 종료 직전까지 월드컵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이변을 꿈꾸게 했다.
메시의 선제골, 그러나 카보베르데는 무너지지 않았다
아르헨티나는 전반 29분 메시의 골로 앞서갔다.
메시는 수비 뒷공간으로 정확하게 침투한 뒤, 넘어온 패스를 빠르게 처리해 골문 위쪽을 강하게 흔들었다. 메시의 개인 통산 월드컵 20번째 골이었다. 많은 시청자는 이때부터 아르헨티나의 일방적인 경기를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카보베르데는 수비 라인을 지나치게 내리지 않았다. 기회가 생기면 빠르게 전진했고, 후반 59분 데로이 두아르테가 동점골을 넣으며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후 아르헨티나가 계속해서 슈팅을 시도했지만, 카보베르데 골문에는 보지냐가 있었다. 그는 메시의 결정적인 슈팅과 프리킥을 연달아 막으며 경기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다.
연장전 시작과 동시에 다시 앞선 아르헨티나
연장 전반 2분, 리산드로 마르티네스가 코너킥 상황에서 골을 넣으며 아르헨티나가 2대1로 다시 앞서갔다.
체력과 선수층에서 우위에 있는 아르헨티나가 결국 경기를 끝내는 듯했다. 하지만 카보베르데는 또다시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연장 전반 13분을 넘긴 시점, 이번 대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가 나왔다.
카보베르데 13번의 환상적인 동점골
등번호 13번 시드니 로페스 카브랄은 왼쪽 측면에서 공을 잡은 뒤 중앙으로 들어왔다. 수비수를 앞에 둔 상태에서 오른발로 감아 찬 공은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가 손을 쓸 수 없는 골문 반대편 위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카보베르데가 다시 2대2를 만들었다.
카브랄은 동료들과 평범한 골 세리머니를 하는 대신 관중석으로 달려갔다. 경기 진행요원들이 그를 제지하려 했지만, 그는 관중석에 있던 한 여성을 찾아 힘껏 끌어안았다. 현지 매체들은 그 여성이 카브랄의 여자친구라고 전했다. 월드컵이라는 가장 큰 무대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꿀 골을 넣고, 가장 가까운 사람과 기쁨을 나눈 순간이었다.
이 장면이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카브랄의 과거 때문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성장한 그는 19세에 집을 떠나 독일 5부리그에서 뛰었다. 당시 월급은 약 850파운드였고, 비어 있는 아파트 창문에 커튼 대신 쓰레기봉투를 붙이고 생활할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 그는 가족과 여자친구, 친구들에게 언젠가는 정상에 오르겠다고 말했고, 독일 5부리그에서 시작해 불과 몇 년 만에 벤피카와 챔피언스리그 무대까지 올라왔다.
그가 골을 넣고 관중석으로 뛰어간 장면에는 단순한 세리머니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승부를 결정한 111분의 자책골
카보베르데의 동점골로 승부차기 가능성이 커졌지만, 아르헨티나는 연장 후반 6분 다시 앞서갔다.
메시의 코너킥을 크리스티안 로메로가 머리로 연결했고, 공이 카보베르데 수비수 디네이 보르지스에게 맞고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공식 기록은 보르지스의 자책골이었다.
카보베르데는 남은 시간에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카브랄의 날카로운 프리킥까지 나왔지만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의 선방에 막혔다. 결국 경기는 아르헨티나의 3대2 승리로 끝났다. 아르헨티나는 16강에서 이집트를 만나게 됐다.
메시를 다섯 번 막아낸 40세 골키퍼 보지냐
카보베르데에서 가장 빛난 선수는 골키퍼 보지냐였다.
본명은 조시마르 조제 에보라 디아스. 1986년 6월 3일 카보베르데 민델루에서 태어난 그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40세가 됐다. 아르헨티나전에서 무려 10개의 선방을 기록했으며, 이 가운데 다섯 차례가 메시의 슈팅을 막아낸 것이었다.
특히 후반 63분 메시가 가까운 거리에서 때린 슈팅을 몸으로 막았고, 후반 73분에는 골문 구석으로 향하던 메시의 프리킥을 손끝으로 쳐냈다. 연장 전반 막판에도 메시의 강한 슈팅을 몸을 날려 막았다.
경기 결과는 패배였지만, 보지냐가 아니었다면 카보베르데가 120분 동안 아르헨티나와 경쟁하는 일은 어려웠을 것이다. 카보베르데 동료 피코 로페스가 그를 “카보베르데 축구의 전설”이라고 표현한 이유다.
20년에 가까운 기다림 끝에 도착한 월드컵
보지냐의 축구 인생은 화려한 엘리트 코스와 거리가 멀었다.
그는 카보베르데의 바투크와 민델렌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뒤 앙골라, 몰도바, 포르투갈, 키프로스, 슬로바키아 등을 거쳤다. 유럽의 빅리그나 유명 구단에서 뛰지는 못했지만, 카보베르데 대표팀 골문을 10년 넘게 지켰다.
2012년 카메룬을 상대로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고, 카보베르데가 사상 처음으로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본선에 진출하는 과정에도 함께했다. 그러나 월드컵 무대에 서기까지는 그로부터 다시 14년이 필요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월드컵 개막 당시 그의 소속팀 계약이 끝나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포르투갈 2부 샤베스와의 계약이 지난 시즌을 끝으로 만료돼,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막아내는 동안에도 그는 새로운 소속팀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름에도 월드컵의 운명이 담겨 있었다
보지냐의 본명 ‘조시마르’에도 특별한 사연이 있다.
그가 태어난 1986년에는 멕시코 월드컵이 열렸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브라질 대표팀에서 활약한 오른쪽 수비수 조시마르의 플레이에 매료됐고, 아들에게 그 이름을 붙였다.
1986년 월드컵을 보며 아들의 이름을 정했던 아버지는 40년 뒤 실제 월드컵 무대에서 아들이 세계적인 골키퍼가 되는 장면을 지켜봤다.
스페인전 선방 후 흘린 눈물과 어머니
보지냐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조별리그 스페인전이었다.
카보베르데의 월드컵 첫 경기에서 그는 일곱 차례의 선방을 기록하며 유럽 챔피언 스페인을 상대로 0대0 무승부를 만들어냈다. 경기 종료 후 보지냐는 골문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당시 그의 어머니 아나 칸디다 에보라는 비자와 여행 비용 문제로 미국에 오지 못했다. 가사도우미로 일해온 어머니는 카보베르데 현지 방송에서 경기 전에 “아무도 내 아들의 골문에 골을 넣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했고, 그 예측은 현실이 됐다.
보지냐의 사연이 알려지자 미국 내에서도 가족의 입국을 도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후 어머니는 비자를 받아 미국으로 향했고, 아들이 월드컵에서 뛰는 모습을 관중석에서 직접 볼 수 있었다.
보지냐가 이번 월드컵에서 원했던 것은 거대한 명예나 기록이 아니었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이 월드컵에서 뛰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고 밝혔다. 그 소원은 이루어졌고, 그는 메시와 아르헨티나를 마지막 순간까지 괴롭힌 월드컵의 주인공이 됐다.
카보베르데는 졌지만 작아지지 않았다
카보베르데는 이번 월드컵에서 한 경기도 승리하지 못했다.
그러나 스페인, 우루과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모두 비기며 32강에 진출했고,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를 연장전까지 몰아붙였다. 인구 약 52만 명의 작은 섬나라는 월드컵 첫 출전에서 세계가 기억할 팀이 됐다.
경기 후 카보베르데 선수들은 한동안 그라운드를 떠나지 못했다. 일부는 고개를 숙였고, 일부는 서로를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번 경기는 탈락한 팀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마흔 살에 처음 월드컵 무대에 선 골키퍼, 독일 5부리그의 빈 아파트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23세 수비수, 그리고 세계 챔피언을 상대로 두 번이나 다시 일어선 선수들의 이야기였다.
아르헨티나는 다음 라운드로 진출했다. 그러나 이날 많은 축구 팬들의 마음속에 남은 팀은 카보베르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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